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악법도 법이다.”가 소크라테스 명언이라는 단초는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尾高朝雄)가 제공했다. 그는 1937년에 펴낸 『법철학(法哲學)』에서 실정법 사상과 소크라테스를 연결하고 있다. 

오다카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고 썼다. 이어서 그는  “소크라테스가 국가의 실정법에 복종하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따라야 할 시민의 의무”라고 설파했다.

그런데 오다카는 일본의 한국 지배를 정당화하고 징병에 찬성하는 논문을 발표한 ‘반민주적 식민주의적 ’인물로서 1945년 해방 후에는  일본 동경대 법학부 교수로 재직했다.

한편, 오다카는 경성제국대학 시절 한국인 제자들을 많이 양성했고, 그의 제자들이 1945년 해방 이후 한국 법학계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특히 그중 몇 사람들은 오다카의 책을 편집하여 자신의 저서로 발표하는 과정을 통해 오다카의 생각이 여과 없이 국내에 전해지면서,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국내에 널리 펴졌다.

필자가 고등학교 다닐 때인 1960년대 후반에도  ‘악법도 법이다’는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알았고, 추호의 의심도 없었다.

게다가 1989년에 나온 중학교 도덕 교과서는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연구 문제에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의 의미를 이 주제에서 공부한 바에 비추어 토론해 보자.”란 문제를 실어 ‘악법도 법이다’를 소크라테스가 한 말처럼 수록했다.

더 큰 문제는 2004년 초에도 교과서에 ‘악법도 법’이란 말이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소개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2003년 11월에 헌법재판소가  헌법연구관들로 팀을 구성해 1년 가까이 초·중·고등학교 사회 교과서 15종 30권을 검토했는데, 이들 교과서에는 헌법과 기본권, 헌법재판 등에 대한 설명 가운데 잘못된 부분이 곳곳에 있었다.

심지어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서는 “악법도 법”이라며 독배를 마시고 숨진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을 강조하기 위한 사례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2004년 11월 7일에 헌법재판소는 ‘악법도 법’이라는 소크라테스의 일화를 준법정신 강조 사례로 사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교육인적자원부에 교과서를 고쳐달라고 요청했다. 

헌법재판소는 ‘실질적 법치주의’와 적법절차가 강조되는 오늘날의 헌법체계에서는 준법이란 정당한 법, 정당한 법집행을 전제로 한다면서 소크라테스 일화를 준법정신과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2004년 11월 7일)

‘악법도 법’이라는 말의 출처와 원전을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적어도 중학교 교과서 편찬자라면 플라톤의 『크리톤』은 읽어보고 확인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도 중견 국회의원조차 ‘악법도 법’은 소크라테스 명언으로 알고 있다. 작년 12월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사실상 낙점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김건희 특검법’을 ‘악법’으로 규정한 데 대해 야당은 거세게 반발했다. 민주당 지도부는 12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동훈 장관을 겨냥해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정청래 최고위원은 한동훈 장관의 악법 발언을 놓고 “ ‘악법도 법’이라 한 소크라테스에게 뺨 맞을 소리”라며 비판했다. (세계일보 2023.12.20.)

이렇게 ‘악법’ 논쟁에 소크라테스가 꼭 등장하는 우리의 현실. 조금 씁쓸하다. 테스 형이 우리에게 한마디 해야 하나.     

‘진실이냐 아니냐’의 검증은 학문이나 언론이나 필수적이다. 더구나 가짜가 넘치고 진짜를  왜곡, 조작하는 딥페이크(Deepfake) 세상에서는 진짜(진실) 확인 작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참고문헌)
o 김주일 지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웅진
씽크빅, 2005, p 129-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