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종열 글로벌경제신문 기자.
안종열 글로벌경제신문 기자.

 

작년까지 '반도체 보릿고개'를 넘어온 삼성전자 노사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사측이 반도체 세계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을 밝힌 반면, 노조는 성과급 파열음으로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에서 15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반도체 업황 악화 영향이다.

"근원적인 경쟁력이 있었더라면 시장과 무관하게 사업을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수장인 경계현 DS 부문장(사장)이 지난 20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한 말이다. 경 사장은 독보적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이 흔들리며 지난해 유례없는 반도체 시황 악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간 업계에선 반도체 경쟁력이 이전만큼은 못하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반도체 수장의 이같은 성찰은 이례적이다. 경 사장은 반도체 초격차 전략을 통해 근본적 체질 개선에 나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면서 "향후 2∼3년 안에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되찾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노조들은 이같은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금 교섭을 두고 사측과 갈등 중인 노조가 지난 18일 조합원을 상대로 쟁의 찬반 투표를 진행하면서다. 투표는 다음 달 5일까지 진행된다. 노조가 공개한 투표율은 지난 19일 오후 3시 30분 기준 80.01%다. 만일 노조가 파업에 들어간다면, 삼성전자 1969년 창사 이래 55년 만에 처음이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격변하고 있는 가운데 선두를 유지하기 위해 삼성전자 노사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잡음이다. 더군다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한 이 시점에 노사의 균열은 큰 파장을 불러올 수도 있다.

HBM 시장은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주도하고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SK하이닉스가 시장을 먼저 개척하고 앞서 나가고 있다. 기술력만 보자면 SK하이닉스가 약 1년 정도 앞서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를 선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의 부진이 눈에 띈다. 이를 자세히 살펴보려면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 HBM은 지난 2008년 미국 반도체 기업 AMD의 제안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1세대와 2세대, 3세대까지는 큰 수요처가 없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2019년 HBM팀을 해체했다. 하지만 지난해 초 생성형 AI 시장이 성장함에 따라 엔비디아의 A100·H100이 함께 들어가는 4세대 HBM3 수요가 폭증했다. 이 수혜는 SK하이닉스가 그대로 받았다. 

언제까지나 메모리 1등을 외치기에는 삼성전자의 입지는 작아지고 있다. 최근 엔디비아 공급 이슈가 있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노사가 힘을 합쳐 반도체 세계 1위 자리를 탈환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