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촉즉발 상황으로 치닫던 우크라이나 사태가 표면적이나마 진정국면에 접어들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접경에 배치된 일부 병력을 훈련 종료를 이유로 원대복귀시키고,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협상을 통한 해결책 모색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 영국 등 서방진영은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부 긍정평가를 하는 한편으로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이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CNN 방송, ABC 방송, AP 통신,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러시아가 1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 배치 일부 병력과 장비를 철수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증명하듯 러시아는 16일 보도문을 통해 "크림반도에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 소속 부대들이 철로를 이용해 원주둔지로 복귀하고 있다"면서 군사장비들을 실은 열차가 이동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함께 공개했다.
국방부는 군인들이 탱크와 장갑차, 자주포 등을 열차에 싣고 복귀를 시작했다면서 복귀 후 장비들은 정례 군사 교육 준비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러시아군은 부대와 전력에 대한 대규모 전술훈련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이 훈련에는 러시아군 5개 군관구 모두와 함대, 공수부대 등이 참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훈련을 마친 남부군관구와 서부군관구 부대들은 이미 열차나 차량으로 군사장비들을 싣고 원주둔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전날 발표를 반복했다.
푸틴 대통령은 15일 올라프 슐츠 독일 총리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일부 병력 철수를 확인하면서 "우리는 유럽에서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라며 "안전보장 문제의 외교적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타스 통신은 유리 필라토프 아일랜드 주재 러시아 대사의 말을 인용, 16일 러시아 서부 지역에 배치돼 훈련 중인 군부대들이 앞으로 4주 뒤까지는 원주둔지로 철수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미국 등 서방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에 접경한 러시아 서부와 남부 지역에는 현재 10만명 이상의 러시아 군대가 배치돼 있다. 또 약 3만명의 다른 러시아 군대는 이웃 국가 벨라루스에서 연합훈련을 벌이고 있다.
바이든은 "러시아군은 여전히 위협적이고 15만 병력이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인근에서 우크라이나를 포위하고 있다"며 "침공은 명백히 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미 상원 지도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 위기가 고조되면 러시아에 강력한 제재를 즉각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러시아가 대화하겠다고 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고무적이진 않다"라고 말했다.
존슨 총리는 러시아가 벨라루스에 야전 병원을 세우고 있다는 첩보를 전하고 "이는 러시아가 침공을 준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러시아군의 복귀 발표 직전만 해도 우크라이나 전쟁 위기는 최고조에 달했다.
이에 미국과 영국 등은 자국민에게 우크라이나 철수를 권고했고, 대사관을 수도 키예프에서 서부도시 리비우로 옮기기도 했다.
서방 지도자들은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면서 러시아 침공이 임박했음을 알렸다.
하지만 러시아는 오히려 보란 듯 서방이 설정한 침공일(16일) 하루 전에 병력의 일부 철수를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계획이 없고, 국경에 병력을 집결한 것도 자체 군사훈련일 뿐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에 러시아는 서방이 지속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임박설을 부각하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타스 통신 등에 따르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16일 우크라이나 침공설'에 관한 서방 언론 보도가 실현되지 않은 데 대한 질문을 받고 "서방의 히스테리는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가 인내를 가져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그러면서 다만 서방 언론, 특히 영국 언론은 자신들의 관측이 실행되지 않았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러시아의 병력 복귀 발표에 대해 군사 전문가들은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고 NYT는 전했다.
NYT는 "이번에 복귀한 군대는 우크라이나와 가까운 러시아 서부·남부지역 군대로, 언제든 쉽게 국경지대로 재투입될 수 있다"라며 "러시아군이 병력은 빼면서도 무기는 그대로 배치해 상황에 따라 신속히 국경지대에서 재무장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랜드연구소 다라 마시코트 군사전략가는 "러시아군이 무기를 남겨둔 채 병력을 철수시키고는 이후 다시 필요에 따라 병력을 보내는 식으로 '사기 게임'(Shell game)를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군의 일부 병력이 복귀했지만 여전히 접경지역에 충분한 병력이 남아 있어 우크라이나 북동부 하르키프로 진격하거나 크림반도를 통해 침공할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우크라이나 위기설이 제기된 이후 러시아군의 일부 병력 철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작년 12월 25일에도 러시아군은 훈련이 끝나 국경 인근 1만여명의 병력을 원부대로 복귀시킨다고 발표했다.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 것은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도 마찬가지다.
드미트로 쿨레바 외무장관은 "귀로 듣는 것은 믿을 수 없다. 눈으로 봐야 믿을 수 있다. 러시아군이 철수하는 장면을 눈으로 봐야, 긴장 상태가 누그러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다"고 주장했다.
이날 우크라이나 국방부와 일부 은행이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외신은 사이버보안센터를 인용, 국방부와 우크라이나군 사이트, 프리바트방크, 오샤드방크 등 일부 은행이 몇 시간 사이에 분산서비스거부(DDoS·디도스) 공격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사이버 공격을 받은 은행은 몇 시간 동안 인터넷뱅킹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피해를 당했다.
디도스 공격으로 인해 큰 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공격의 배후로 지목했다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외신은 러시아의 복귀 발표로 서방과 러시아의 '외교의 창'은 그만큼 넓어졌다고 진단했다.
바이든 대통령도 15일 '침공시 단호한 대처'를 확인하면서도 "외교가 성공할 때까지 모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며 러시아와 협상 가능성을 열어뒀다.
러시아 외무부도 이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게 전화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측에 전달된 (러시아의) 안전보장 제안과 관련한 협의를 계속하는 것이 중요함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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