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우크라)사태가 해법 마련은커녕 점점 더 꼬이는 형국이다.
국지전 양상과 외교적 시도 사이에서 오가던 우크라 사태는 21일(현지시간)부터 극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뇌관'인 동부 돈바스 지역에 거주하는 친러시아 성향의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독립승인과 '러시아 평화유지군' 진입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이를 맹비난한 후 해당 지역에 대한 신규 투자와 금융거래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첫 제재 조처에 나섰다.
러시아는 지난해 말부터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과 군사적 긴장 가운데서도 몇 차례의 정상급 회담과 다자회담을 잇따라 가지면서 표면적이나마 외교적 해법을 모색해왔다.
러시아는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 중단,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금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 동유럽 주둔 서방 군사력 축소 등 종래의 요구사항을 고수했다. 바로 눈 앞의 '비수'를 그냥 좌시할 수없다는 이유에서다.
러시아는 전체 병력의 75%인 120개의 대대전술단(BTG)과 자주포, 전차, 전폭기 등 최신예 장비를 우크라 접경 60km 이내에 포진시켜 위협 수위를 높였다.
또 '리틀 러시아'(Little Russia)인 벨라루시와의 합동훈련을 핑계로 군사훈련을 지속하는 한편, 푸틴 주재로 전략핵전력 발사훈련까지 실시했다.
이와 함께 '한 가족'인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칸스크인민공화국'(LPR) 분리주의 세력을 '부추겨' 우크라이나 정부관과의 교전을 유도, 개입의 명분을 쌓으려는 시도도 엿보였다.
그러면서도 스푸트니크 통신 등 관영 언론을 통해 '훈련 종료'를 핑계로 배치 병력의 철수 장면을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나 서방 측은 러시아의 이런 움직임을 "쇼"(show)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고, 잇따라 러시아의 침공 가능성을 발표했다. 미국은 폴란드, 루마니아 등 우크라이나 인근 국가에 정예 병력을 증파하면서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는 정보가 있다"라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가 중재자로 나서 미러 정상회담을 통해 사태 해결의 전환점이 마련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결과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영토에 러시아가 병력을 진입시키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자칫 전면전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는 '무모한' 상황으로 사태를 악화시킨 푸틴 대통령의 의도는 뭘까?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오가지만 세 가지에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그 첫째는 대(對) 서방 협상력을 최대한 높여 최대한의 양보를 이끌겠다는 계산속이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 평화 유지 지원을 빌미로 병력을 진주시킴으로써 향후 미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이라는 풀이다.
러시아군 진주는 지금보다 장애물이 하나 더 생기기 때문에 서방은 이 문제 해결에 주력할 수밖에 없어 결국 더 많은 양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더구나 서방은 회원국들 간에 이해관계가 다른 실정이다. 반면 푸틴의 철권통치하에 있는 러시아로서는 강대강 대결 국면에 '도사'인 만큼 승산이 있다는 확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26일로 예정된 미ㆍ러 정상회담 개최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물밑협상라인이 여전히 열려 있는 만큼 러시아로서는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진듯하다.
두 번째는 최악의 상황을 회피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분석이다. 21세기 패권 다툼의 대리지인 우크라니아에서 러시아가 서방의 경고와 제재에 굴복한다면 코밑인 우크라의 서방화가 현실로 나타날 것 가능성이 크다.
이는 궁극적으로 러시아 영향력 급락과 푸틴 체제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피하려면 이번 대결에서 최소한 '무승부'를 거둘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세 번째는 전면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전망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국지전이 한동안 진행되겠지만 서방과 러시아가 충돌하는 '유럽전쟁'으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내다봤다.
러시아군이 돈바스의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군사력 지원을 하겠지만, 미군이나 영국군 등 서방측 병력과 직접 충돌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지난달 카자흐스탄에서 물가인상을 이유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를 사례로 적시했다. 당시 러시아는 카자흐 정부 요청으로 공수부대를 중심으로 2500명의 평화유지군을 파견했다가 1주일 만에 철수했다.
물론 양상이 다르지만 이번에도 러시아는 일정 기간 무력시위를 한 후 철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에다 러시아의 '돈줄'인 천연가스와 원유 수출이 사실상 막히고, 강력한 금융제재로 인내심을 뛰어넘는 경제 파국 가능성도 전면전보다는 국지전 가능성 쪽으로 무게가 더 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