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 달이 됐다

 지금 러시아는 정치.군사.외교. 경제적으로 라스푸티차(뻘밭)에 빠진 채 '영예로운'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상황이다. 명확한 전술ㆍ목표가 뭔지 파악이 안 된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개시 장면[AFP=연합뉴스]
2월 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개시 장면[AFP=연합뉴스]

 

 교전 상황에서도 종전협상이 진행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와는 거리가 멀다. 

 워낙 복잡다기하게 얽힌 원인은 제쳐두고 이번 전쟁에서 최대 피해자는 양국민들뿐이다.  

오판과 자만으로 개전 초부터 고전 

 애초 침공 초기 때만 하더라도 러시아의 압승 전망이 우세했다. 전력 차가 워낙 큰 데다 접경 지역에 수개월간 대규모 전력을 집중한 러시아로서는 파죽지세로 단기간에 승기를 잡을 것을 예상됐다.

 실제로 러시아는 북부 벨라루스, 러시아 서부와 크림반도 그리고 남부 흑해 등 3개 방면에 19만명 규모의 증강된 병력을 배치한 것으로 파악됐다. 

파괴된 러시아군의 전차[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파괴된 러시아군의 전차[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는 26만명 규모의 우크라이나군을 '오합지졸'로 오판했다. 이에 따라 개전 후 3-4일 내에 수도 키이우(옛 키예프)로 곧장 진공, 항복을 받아낼 것이라는 전망이 러시아뿐만 아니라 서방에서도 우세했다.

 벨라루스에 주둔하는 러시아군이 신속하게 남하하면, 공수부대가 키이우인근 호스포멜 비행장을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에다 전차와 장갑차로 구성돼 기동성이 뛰어난 대대전술단(BTG)과 시가전과 심리전에 강한 특수부대(스페츠나츠),  우세한 항공력과 미사일 전력을 투입하면 전세를 단기간에 유리한 국면으로 전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볼노바하의 들녘에 추락해 불타고 있는 러시아군 전투기의 모습을 촬영해 우크라이나군이 4일(현지시간) 제공한 사진. 러시아 공군은 제공권 장악에 실패하며 전황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으로 군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의 볼노바하의 들녘에 추락해 불타고 있는 러시아군 전투기의 모습을 촬영해 우크라이나군이 4일(현지시간) 제공한 사진. 러시아 공군은 제공권 장악에 실패하며 전황이 당초 예상과 다르게 흘러가는 것으로 군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로이터=연합뉴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무엇보다 전쟁 목표가 불분명했다. 영토 확장이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의 동진(東進)을 억제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미국과 신(新)냉전 대결구도로 갖고 가려는지 목표가 분명치 않았다.

  뚜렷한 목표 설정이 안된 마당에서도 전술계획은 거창했고, 자신감도 넘쳐났다. 호스토멜 비행장 점령이 실패한 데다 키이우로 호기 있게 진격하던 기갑전력이 우크라이나군의 매복에 걸렸기 때문이다. 

 러시아군의 기갑전력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미국제 대전차 미사일 재블린과 영국제 NLAW였다. 특히 2014년 크림반도를 속수무책으로 러시아에 합병당한 쓰라린 경험을 가진 우크라이나군은 간선도로를 중심으로 매복작전을 전개, 기갑전력을 주저앉히는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을 사용해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미국산 대전차 미사일인 '재블린'을 사용해 군사훈련을 하고 있다[우크라이나 국방부 제공.연합뉴스 자료 사진]

 진흙탕에 전차와 장갑차들을 버리고 도주하는 병사들이 늘어났다. 더구나 우크라이나군이 후미에 따라오는 유조차 등 보급차량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한 것도 진격을 멈추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연료와 식량 부족으로 나기지도 못한 채 일직선으로 늘어선 기갑전력은 좋은 표적이었다.

 지상군 구성도 엉망이었다. 우크라이나는 프랑스 면적과 맞먹을 만큼 광할한 데다 대도시가 많다. 이 말은 타격 목표가 많고 전투도 시가전 위주로 이뤄진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전 초기만해도 서방 군사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가공할만한 미사일 파상공격을 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 인근 도로에 28일(현지시간) 파괴된 러시아 지상군 전술기동차량들이 방치돼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제2도시 하르키우 인근 도로에 28일(현지시간) 파괴된 러시아 지상군 전술기동차량들이 방치돼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유는 간단했다. 정밀유도무기 재고 부족으로 모든 표적 타격이 현실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개전 이후 지난 1개월 동안 러시아가 발사한 미사일은 수백발 수준으로 파악됐다. 또 지상군 병력도 징집병과 계약직 지원병이 섞여 있어 전투에 임하는 자세와 숙련도도 큰 차이를 보였다. 여기에다 지상작전계획도 시가전이 아닌 농촌 지역 중심으로 마련됐다.

 이번 침공에서 대대전술단의 기대도 무너졌다.  우호세력이라고는 거의 없는 전장에서 중령급 지휘관 한 사람이 10개 중대를 통솔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연료와 식량 등 보급이 매복공격으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연료와 식량이 없거나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원할한 작전을 기대하기란 애시당초 무리다.

극초음 미사일 '킨잘'을 탑재한 러시아의 MIG-31 전투기[러시아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극초음 미사일 '킨잘'을 탑재한 러시아의 MIG-31 전투기[러시아 국방부 제공. 연합뉴스]

 

 통신체계를 포함한 정보전에서도 문제가 드러났다. 통신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보안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통신 보안과는 거리가 멀었다. 교신을 암호화된 장비 대신 싸구려 중국제 휴대폰으로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는 곧 쉽게 도감청이 가능하다는 마찬가지다.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텔레그램 등 SNS를 통해 러시아군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민간인들의 제보도 쏟아졌다. 우크라이나군은 또 도로 표지판도 철거했다. 이 바람에 러시아군은 수십 년 전에 제작된 낡은 지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또 수렁이 많은 샛길이나 비포장도로 대신 도시로 향하는 간선도로를 이용했다. 우크라이나군은 이를 간판해 간선도로 주위에 매복을 설치한 후 비교적 공격이 쉬운 후미의 유조차나 식량과 탄약을 실은 트럭대열을 타격, 이들을 주저앉히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지휘 러시아군 장성 중 3번째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제29 제병합동군 사령관(소장)[BBC 캡처]
우크라이나 침공 지휘 러시아군 장성 중 3번째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제29 제병합동군 사령관(소장)[BBC 캡처]

 공군 조종사들의 낮은 숙련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번 침공에서 러시아 지상군은 무장헬기나 지상공격기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조종사의 기량이 떨어지고 기종도 노후기가 대부분이었다. 지상전을 원할하게 진행하려면 작전에 차질을 빚는 표적에 대한 정밀타격이 관건이다. 그러나 이번 침공에서 러시아군 조종사들은 우크라이나군의 촘촘한 방공망에 걸려 격추된 사례가 많았다.  또 실전 경험이 풍부한 우크라이나 공군 조종사들과의 공중전에서도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지상군이 바라는 항공 지원이 이뤄지지 않았다.

MIG-31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러시아 극초음속미사일 '킨질'[AP=연합뉴스 자료 사진]
MIG-31 전투기에서 발사되는 러시아 극초음속미사일 '킨질'[AP=연합뉴스 자료 사진]

 

 ◇크림반도 합병 '학습효과'로 우크라, 결사항전 

 이번 전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를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국민이 보여준 결사항전 모습은 국제사회의 감동과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수백만명의 노약자들이 폴란드와 헝가리 등으로 피난하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은 화염병을 만들고 총동원령에 따라 총을 들었다. 또 서방에서 지원한 재블린, NLAW 스팅어 미사일, 기관총, 유탄발사기 등도 이런 결사항전에 큰 힘이 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의 침공 상황을 설명하는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 침공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공격에 비유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군 전면 침공에 맞서기 위해 이날 국가 총동원령을 승인했다[AFP=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의 침공 상황을 설명하는 대국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군 침공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공격에 비유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군 전면 침공에 맞서기 위해 이날 국가 총동원령을 승인했다[AFP=연합뉴스]

 

 여기에다 2014년 크림반도를 러시아에 합병당했을 때의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대전차전은 물론이고 심리전과 홍보전에도 능수능란함을 보이고 있다. 특히 크림반도 합병 이후 나토의 도움으로 정규군과 특수부대들의 양성에 주력하고, 저격소총, 유탄발사기, 대공화기 등 웬만한 것은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방위산업을 키워온 것도 큰 힘이 됐다는 분석이다.

러시아 침공 대비 훈련하는 우크라이나군과 의용군[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 침공 대비 훈련하는 우크라이나군과 의용군[연합뉴스 자료 사진]

 그동안 소극적이던 서방세계도 이번 침공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러시아를 국제금융 결제 체계에서 배제한 'SWIFT'로 대표되는 금융제재에서부터 이번 침공을 지시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사실상 전범으로 규정하는 것까지 고강도 압박을 가하고 있다. 

 서방은 3차 세계대전을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 파병과 우크라이나 영공에 대한 비행금지구역 설정 요구를 거부한다. 하지만 대전차ㆍ방공미사일과 자폭용 드론 등 이번 전쟁에서 효과를 입증한 무기 공급을 확대하고 이다.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크림반도 병합 8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러시아, '플랜 B'로 전환... 주요 도시 초토화로 유리한 국면 모색

  전쟁 상황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28일 1차 협상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4차 협상을 진행해왔다. 이 협상에서 양측은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와 나토 가입 포기 부분에서는 입장차를 좁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토 문제를 놓고는 여전히 평행선이다. 러시아는 크림반도합병과 동부 접경 돈바스 지역의 친러 공화국 독립 인정을 요구하지만,우크라이나는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정전협상장의 우크라이나 국기(좌)와 러시아 국가[타스=연합뉴스]
정전협상장의 우크라이나 국기(좌)와 러시아 국가[타스=연합뉴스]

 협상에 진전이 없자 러시아는 2단계 계획(플랜 B)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절(WSJ)은 완강한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에 막혀 키이우 공략이 진전을 보지 못하자 다른 주요 도시를 포위 공격해 점령하고서 우크라이나 정부를 압박하면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전술로 전환이라고 설명한다.

 

 

 러시아는 주요 도시에 대한 무차별 폭격과 산업시설 파괴 및 민간인 희생 최대화가 핵심인 이런 압박 전술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중립국화를 달성하고 우크라이나 남부와 동부 돈바스 지역을 가져가려 하는 것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추정한다.

러시아군 포격에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거리[AP=연합뉴스]
러시아군 포격에 초토화된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거리[AP=연합뉴스]

 러시아가 플랜 B로 전환하는 또 다른 요인은 인적 손실 때문이다. 장성 6명을 포함해 전사자만 최대 1만명에 육박한 상황에서 손실이 큰 지상전을 오래할 여력이 없다.  부족한 병력을 멀리 캄차카의 극동군까지 재배치하는 실정에서 눈을 돌린 것은 용병이다. '바그네르'로 유명한 민간군사기업에서부터 시리아와 체첸 전투원 등을 대대적으로 모아 우크라이나에서 주로 시가전에 투입할 계획이다. 

 현재 러시아군은 마리우폴, 헤르손 등 남부 연안 항구, 친러 분리주의 세력 근거지인 동부 돈바스에 대한 미사일 공격과 폭격을 중심으로 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마리우폴을 함락하면 돈바스와 곧장 연결이 가능하다.

바그네르 소속 용병들[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 캡처]
바그네르 소속 용병들[미국 싱크탱크 제임스타운재단 캡처]

 이미 멜리토폴과 헤르손을 장악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최대 항구이자 물동항인 남서부 오데사 함락을 위해 맹공을 가하고 있다. 특히 흑해, 아조프해 연안의 항구도시들을 잇따라 손에 넣으면 우크라이나 해상 물류를 끊을 수 있어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영국 국방·안보 싱크탱크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소속 잭 와틀링 연구원은 2주 이내에 전쟁이 끝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가오는 2주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 거리에 러시아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체코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최대 물류 항으로 '경제 심장'인 오데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EPA=연합뉴스]
16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남부 항구 도시 오데사 거리에 러시아군의 침공을 막기 위해 '체코 고슴도치'라고 불리는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돼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최대 물류 항으로 '경제 심장'인 오데사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앞둔 것으로 전해졌다[EPA=연합뉴스]

 

 그는 "모든 징후를 보면 러시아가 공격을 늦추기보다는 배가할 것처럼 보인다"라며 이는 속도가 더 느릴지라도 우크라이나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비슷한 전망을 내놓았다. 러시아가 앞으로 '이스칸데르' 지대지 미사일 등을 동원한 주요 도시들에 대한 초토화에 주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러나 '치르콘'과 '킨잘' 등 보유분이 얼마 되지 않는 값비싼 극초음속미사일보다는 생산된지 오래된 노후 전술미사일과 '멍텅구리 폭탄'인 재래식 폭탄을 동원해 무차별 폭격을 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결전 임박 속 피란길 서두르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민들[로이터=연합뉴스]
결전 임박 속 피란길 서두르는 우크라이나 마리우폴 주민들[로이터=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