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연합뉴스 자료 사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예브게니 프리고진 바그너그룹 수장[연합뉴스 자료 사진]

'푸틴의 셰프,' '푸틴의 닌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맞서 무장반란을 일으킨 용병업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에 따라붙는 표현들이다.

표현만으로도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2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이런 '브로맨스'는 종지부를 찍게됐다.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넌 셈이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의 부대원들과 장갑차가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 등장했다[타스=연합뉴스]
러시아 용병기업 바그너의 부대원들과 장갑차가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거리에 등장했다[타스=연합뉴스]

두 사람 인연의 출발점은 러시아의 두 번째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다. 두 사람 모두 이곳이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푸틴에게 이곳은 정치적 출세가도를 걷게 된 시발점으로, 프리고진으로서도 돈과 권력을 가져다준 곳이라는 공통점을 각각 갖고 있다. 

프리고진은 비행소년 출신이다. 유대계로 일찍 아버지를 잃은 그는 18살 때 절도죄로 수감된 것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교도소 신세를 졌다.

그러나 9년 간의 복역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복귀한 프리고진은 지난 1990년 가족과 함께 핫도그 장사로 돈을 모았다.

'푸틴의 요리사'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설립자(왼쪽)[로이터 캡처]
'푸틴의 요리사'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 와그너그룹 설립자(왼쪽)[로이터 캡처]

이듬해 소련이 붕괴하자 그는 식료품, 카지노 사업을 이어갔다. 이어 지난 1995년에는 음식점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자수성가한 그저그런 사업가로서의 생을 영위할 수 있었던 프리고진에게 '운명적인 전환점'이 찾아온 것은 지난 2001년이다. 대통령에 취임한지 1년 밖에 안되는 푸틴을 만나면서부터다. 

프리고진은 자신이 지분을 가진 수상식당 '뉴 아일랜드'(New Island)에서 푸틴과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던 자크 시라크에게 개인적으로 음식을 서빙했다. 이듬해에도 프리고진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손님으로 맞았다. 

특히 지난 푸틴이 지난 2003년 자신의 생일 파티를 이 식당에서 열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본격적으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친분을 무기로 프리고진은 이후 외식 업체 '콩코드 케이터링'(Concord Catering)을 설립해 여러 건의 정부 계약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바흐무트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건물 밖에 서 있는 바그너그룹 용병[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달 24일(현지시간) 바흐무트 폭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건물 밖에 서 있는 바그너그룹 용병[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특히 그는 '노다지'나 마찬가지인 러시아군 식사 공급 계약까지 따내면서 상승가도를 달렸다.

이런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으로 여기서 발생한 수익으로 프리고진은 여론 조작 기관인 '인터넷 리서치 에이전시'(IRA)를 설립했다. IRA는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때 영향력을 행사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러나 프리고진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용병 기업 바그너그룹을 설립하면서부터다. 바그너그룹의 표면적 설립자 겸 오너는 한국의 정보사령부와 유사한 군정찰국(GRU) 직할 특수부대(스페츠나츠) 중령 출신인 드미트리 우트킨이다.

모스크바 타임스에 실린 바그너그룹 최고경영자 드미트리 우트킨(붉은색 네모 표시된 인물)[위키미디어 제공]
모스크바 타임스에 실린 바그너그룹 최고경영자 드미트리 우트킨(붉은색 네모 표시된 인물)[위키미디어 제공]

전역 후 프리고진의 경호대장으로 활동하던 우트킨과의 결합은 '금상첨화'였다. 특히 비밀경찰(KGB) 출신인 푸틴의 눈에 바그너그룹은 '비밀해결사'로서 안성맞춤이었다.

GRU 산하 스페츠나츠 등 특수부대 출신들로 구성된 바그너그룹 용병들은 정규군이 하기 힘든 살인, 납치, 암살, 협박, 미행 등 '더러운 일'(dirty job)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전문가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발족 직후 바그너그룹은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침공(2014년)과 강제병합 과정에서 정찰에서부터 암살과 납치, 폭파까지 기대에 부응했다.

여기에다 옛 소련 시절의 영향력 회복을 노리는 푸틴에게 정규군 투입이 어려운 아프카, 중동 지역에서의 '해결사' 역할에 바그너그룹은 제격이었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이 러시아 용병 바그네르를 기념해 수도에 세운 조형물[BBC 캡처]
중앙아프리카공화국(CAR)이 러시아 용병 바그네르를 기념해 수도에 세운 조형물[BBC 캡처]

실제로 바그너그룹은 시리아,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리비아 등에서의 '대리전'을 성공적으로 수행, 푸틴의 신뢰를 더욱 쌓아갔다. 물론 이 과정에서 바그너그룹은 온갖 범죄행각을 벌여 국제사회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바그너그룹은 최격전지인 동부 지역에 배치돼 첨병과 돌격대 임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워낙 '인해전술'에 의존한 까닭에 병력 소모가 크자 프리고진은 활발한 용병 모집 활동을 벌이는 한편 푸틴을 설득해 죄수까지 바그너그룹 요원으로 강제징집하기도 했다.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러시아 민간 용병업체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애초 예상과 달리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정규군 희생이 커지자 푸틴으로서도 프리고진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자신에 대한 푸틴의 신임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권력강화를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의 작전술과 인사에 대해 수시로 간섭, 갈등을 초래했다.

심지어 소설미디어와 언론을 통해 노골적으로 군 수뇌부를 "부정부패하고 무능한 소수"라고 맹비난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21일(현지시간) 사관학교 졸업생을 상대로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21일(현지시간) 사관학교 졸업생을 상대로 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설을 듣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여기에다 실제 전투에 투입된 바그너그룹 용병들도 현지 정규군 지휘관들의 작전 지시를 무시하는 한편 작전지를 무단으로 이탈해 작전 수행에 큰 차질을 빚기도 했다.

이런 행동은 러시아 정규군 내부에서 큰 반발을 일으켰다. 처음엔 프리고진의 '안하무인'을 눈감아주던 푸틴도 자신의 권좌를 위협하는 군 수뇌부의 반발과 이탈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푸틴은 프리고진에 대한 '손절'에 나섰다. 러시아군 수뇌부는 바그너그룹으로부터의 보급과 병력 보충 지원 요청을 묵살하게 됐다.

"바흐무트는 우리 것" 점령 발표한 러시아군[AFP 연합뉴스]
"바흐무트는 우리 것" 점령 발표한 러시아군[AFP 연합뉴스]

이 바람에 바그너그룹은 작전에서 패전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분개한 프리고진은 쇼이구 국방장관과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을 정점으로 하는 군 수뇌부에 대한 비난성 공격 수위를 높여갔다.

급기야 그는 권력으로부터 '팽'당했다고 판단하자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다. 푸틴도 싸잡아 비난했기 때문이다.

프리고진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24일 무장반란을 일으킨 후 러시아로 진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 인근 거리에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배치된 모습[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로스토프나도누 군 사령부 인근 거리에 바그너 그룹 용병들이 배치된 모습[로이터=연합뉴스]

무장반란으로 프리고진은 '전쟁 공훈자'에서 반역자로 낙인이 찍히게 됐다. 

푸틴도 이를 의식한듯 24일 TV 연설에서 프리고진에 대해 "과도한 야망과 사욕이 반역이자 조국과 국민에 대한 배반으로 이어졌다"며 "가혹한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에 대해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이처럼 밝히고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다. 반역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스푸트니크.AFP=연합뉴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용병기업 바그너 그룹의 무장반란에 대해 "우리는 등에 칼이 꽂히는 상황을 목격하고 있다. 반역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외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날 TV 연설에서 이처럼 밝히고 "우리의 대응은 가혹할 것이다. 반역 가담자는 처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스푸트니크.AFP=연합뉴스]​

20년간의 브로맨스가 결국 총부리를 서로 겨누는 사이로 바뀐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