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 병사가 하마스가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자지구의 땅굴을 수색하고 있다[AP 캡처]
이스라엘군 병사가 하마스가 은신한 것으로 추정되는 가자지구의 땅굴을 수색하고 있다[AP 캡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공격으로 촉발(10월 7일)된 이스라엘-하마스전쟁이 두 달째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신박한' 묘책을 내놓았다.

골칫거리인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 대원들을 지상으로 이끌어내 섬멸하기 위해 땅굴을 바닷물로 침수시키는 작전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유튜브에 게재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하마스 수공작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유튜브 캡처]
유튜브에 게재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하마스 수공작전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유튜브 캡처]

 

하마스의 '최고 무기' 땅굴... 길이 500km, 깊이 40m 이상으로 난마처럼 구성

하마스가 근거지인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오랫동안 구축한 땅굴은 이스라엘군의 작전을 더디게한 최대 복병으로 지적돼왔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복잡하고도 방대한 땅굴은 각각 길이 300마일(483km), 깊이 40m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런 구조 때문에 이스라엘군은 공습에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1980년대에 구축된 '필라델피아 루트'(Philadelpia Route)로 알려진 이집트와 연결된 밀수용 땅굴도 복병이다. 그러나 하마스가 거미줄처럼 이어진 현재의 땅굴망을 구축한 것은 2005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한 2005년 이후부터로 알려졌다.

2018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와 이스라엘간 땅굴을 통한 공격에 쓰인 곳이라며 공개한 터널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2018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와 이스라엘간 땅굴을 통한 공격에 쓰인 곳이라며 공개한 터널 [로이터=연합뉴스 자료사진]

하마스는 조립식 콘크리트 패널로 터널의 규격을 높이 6피트(1.8m), 폭 3피트(0.9m)로 표준화했다.

미국 싱크탱크 랜드의 2014년 연구에 따르면 하마스는 당시 지하터널 건설에 900명을 상시 고용했다.

가자지구에 거미줄처럼 구성된 땅굴에서 작전 중인 하마스 대원[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가자지구에 거미줄처럼 구성된 땅굴에서 작전 중인 하마스 대원[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가지지구 내 장소와 건물에 거미줄처럼 이어진 곳 못지 않게 설치된 수많은 부비트랩도 골칫거리다. 

무장세력 팔레스타인 이스라믹지하드 대원이 자가지구 하마스 땅굴을 걷고 있다[EPA=연합뉴스]
무장세력 팔레스타인 이스라믹지하드 대원이 자가지구 하마스 땅굴을 걷고 있다[EPA=연합뉴스]

군사 전문가인  에드워드 루트왁은 일부 땅굴에는 "비교적 정교한 로켓 조립장, 모터 조립 작업장, 판금·폭발물 보관소, 탄두 제조 작업장 등이 있다"며 다른 땅굴에는 지휘소와 소형 무기가 보관돼 있다고 밝혔다. 또 가장 깊은 땅굴에는 하마스 지도자들이 거주하고 회합을 하는 곳으로 전해졌다.

'48일만에 고국으로'…하마스, 이스라엘 인질 13명 1차석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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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하마스가 인질들과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땅굴에 억류하면서 인간 방패'로 이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철저한 작전계획없이 땅굴전을 수행하다간 인질을 포함한 민간인들의 희생을 수반하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와 이에 따른 거센 비판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하마스에 의해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들이 석방을 위한 조건을 이스라엘이 수락할 것을 촉구하는 동영상 장면[Times of Israel 홈페이지 캡처]
하마스에 의해 억류 중인 이스라엘 인질들이 석방을 위한 조건을 이스라엘이 수락할 것을 촉구하는 동영상 장면[Times of Israel 홈페이지 캡처]

이스라엘, 땅굴 색출과 파괴에 전념했지만 실패... '땅굴 특수부대'도 발족

이번 전쟁 이전에도 이스라엘은 10년가량 땅굴을 색출해 파괴하려고 애썼지만, 제한적인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최대 의료시설인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지하에서 발견된 무장정파 하마스의 땅굴 시설을 안내하는 이스라엘군 병사[AFP=연합뉴스]
22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내 최대 의료시설인 가자시티 알시파 병원 지하에서 발견된 무장정파 하마스의 땅굴 시설을 안내하는 이스라엘군 병사[AFP=연합뉴스]

더타임스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2021년 '11일 전쟁 ' 당시 60마일(97㎞)의 지하터널을 발견하고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같은 해 하마스가 '가자 지하철'을 300마일(약 482㎞) 이상으로 확장했다며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스라엘은 건축자재가 터널 건설에 사용되는 걸 막으려고 건설 현장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승인·검증 절차를 강화했다.

가자지구의 하마스 땅굴 입구를 살피는 이스라엘군[이스라엘군 제공]
가자지구의 하마스 땅굴 입구를 살피는 이스라엘군[이스라엘군 제공]

그러나 건축자재 암시장이 커지고 재활용되거나 전쟁으로 망가진 콘크리트와 고철이 또 다른 재료 공급원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스라엘은 땅굴전을 전문으로 수행하는 특수부대도 발족했다. 그 가운데 이번 전쟁으로 가장 유명세를 탄 것이 바로 '야홀롬'과 '사무르'다.

각각 다이아몬드와 족제비를 뜻하는 야홀롬과 사무르는 공병 산하 땅굴전 전문 특수부대다.

인공지능을 갖추고 폭발물 탐지와 파괴 임무를 지원하는 이스라엘 공병 특수부대 '야홀롬'의 작전 수행 장면[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인공지능을 갖추고 폭발물 탐지와 파괴 임무를 지원하는 이스라엘 공병 특수부대 '야홀롬'의 작전 수행 장면[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1995년 발족된 야할롬은 △폭발물 설치를 통한 파괴 폭탄과 지뢰, 불발탄의 제거 및 폐기 밀수 터널 수색 및 파괴 화생방 결과 관리 △對게릴라전에 특화된 부대다.

그런 만큼 야할롬은 땅굴 탐지와 파괴 전문가 집단으로, 이들은 땅굴 같은 폐쇄적인 환경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집중적인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AI)을 갖춘 장비 등을 이용해 하마스가 은신한 땅굴 입구로 진입하는 이스라엘 공병특수부대 '야홀롬' 대원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인공지능(AI)을 갖춘 장비 등을 이용해 하마스가 은신한 땅굴 입구로 진입하는 이스라엘 공병특수부대 '야홀롬' 대원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야할롬 부대원들의 활약상이 처음 언론에 보도된 것은 지난달 초. 이들은 타 부대 소속 공병 및 보병들과 함께 하마스의 근거지인 가자지구 북부에서 다수의 땅굴 입구를 발견해 갱도를 폭파하고 폭발물을 설치하고 폭파했다. 

이스라엘은 땅굴 파괴를 위해 인공지능(AI), 드론, 야할롬, 화학무기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고 있다. 여느 특수부대와 마찬가지로 야할롬도 개발 장비와 설비 대부분이 기밀이다.

가자지구의 알시파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이 발견한 하마스의 무기들[이스라엘군 제공]
가자지구의 알시파 병원에서 이스라엘군이 발견한 하마스의 무기들[이스라엘군 제공]

그러나 일부 외신을 종합해보면 야할롬은 ‘AI 로봇, 적외선, 엑스레이 관측장비, 땅굴 파괴용 특수폭발물 등의 장비와 특수훈련을 받은 군견 등으로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를 상대로 작전을 수행 중인 이스라엘 야홀롬 특수부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를 상대로 작전을 수행 중인 이스라엘 야홀롬 특수부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이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스로봇이라는 정찰용 로봇과 소형 트럭 로봇. 1차 정찰에 투입된 이 로봇들이 땅굴에 침입해 부비트랩을 미리 폭발시키는 한편으로 땅굴 내부물체나 사람을 감지하며 영리하게 이동할 수 있다.

로봇들이 1차 정찰을 마치면 야할롬이 군견과 함께 투입돼 잔여 하마스 대원 소탕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2014년에 발족된 사무르는 별도의 특수부대가 아니라 야할롬 산하의 소대급 특수임무팀 가운데 하나다. 

가자지구 인근에서 순찰 중인 이스라엘군[로이터 캡처]
가자지구 인근에서 순찰 중인 이스라엘군[로이터 캡처]

사무르는 땅굴 발견과 파괴 및 은닉 무기 회수 등의 임무를 전문으로 수행합니다. 필요시 땅굴 내에서 교전 수행 능력도 갖췄다.

야할롬 산하에는 사무르 외에도 무기를 은닉한 인프라 파괴를 전문으로 하는 야엘,’ 지뢰와 불발탄두를 제거하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를 전문으로 해체하는 그리고 폭약으로 건물을 부순 후 침투를 전문으로 하는 미드론 무쉬라그등도 존재한다.

하마스가 구축한 땅굴 입구를 찾는 이스라엘군과 관련 장비[이스라엘 국방부 제공]
하마스가 구축한 땅굴 입구를 찾는 이스라엘군과 관련 장비[이스라엘 국방부 제공]

작전효과 극대화 위해 침수작전으로 급선회...최소 5개의 대형 펌프 설치 완료 

이스라엘이 이번 침수작전으로 급선회한 것은 기존의 방식으로는 작전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를 상대로 수공전을 계획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4일 기사[WSJ 챕처]
땅굴에 은신한 하마스를 상대로 수공전을 계획 중이라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4일 기사[WSJ 챕처]

이와 관련해 눈에 띄는 것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의 4일(현지시간) 보도 내용이다. WSJ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당국자를 인용, 이스라엘군이 지난 달 중순 가자지구 알샤티 난민캠프 북쪽으로 4㎞(1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에 바닷물을 끌어오기 위한 대형 펌프 최소 5대를 설치해 둔 상태라고 전했다.

각 펌프는 지중해로부터 시간당 수천㎥의 해수를 끌어와 몇 주 내로 하마스 지하 터널을 물에 잠기게 할 수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수담수화 시설[WSJ 캡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해수담수화 시설[WSJ 캡처]

이스라엘은 지난 달 초 미국에 이 같은 계획을 알려왔다. 이에 미 당국자들 사이에서 이 계획의 군사적 가치와 실현 가능성, 환경에 미칠 영향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고 당국자는 전했다.

또 다른 미 당국자들도 이스라엘 정부가 이 계획의 실현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알지 못한다고 실토했다. 또 이스라엘이 계획을 실행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리지도, 그렇다고 계획을 폐기하지도 않은 상태라고 덧붙였다.

개전 후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개전 후 처음으로 가자지구를 방문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AFP=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에 이스라엘군 당국자는 침수 계획에 대해 함구로 일관했다. 그는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테러 능력을 해체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작전을 수행 중이며 여러 군사적, 기술적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다"며 형식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美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찬반론 엇갈려

WSJ에 따르면 침수작전 계획과 관련해 미 정부 당국자들의 의견도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이다.

미 국방부(펜타곤) 전경[로이터 캡처]
미 국방부(펜타곤) 전경[로이터 캡처]

찬성론자들은 지하 터널이 물에 잠기면 하마스 대원과 인질들이 지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또 하마스의 주요 군사 수단인 지하 터널도 완전히 파괴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그러나 가자지구에 억류된 인질이 모두 풀려나기 전에 이스라엘이 이런 침수 작전 실행을 고려할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다는 게 WSJ의 관측이다.

반면 반대론자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이같은 작전이 성공 여부가 불확실할 뿐 아니라, 이미 식수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가자 주민들에게 추가적인 인도주의적 참사를 안길 것이라는 우려다.

지난 달 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지난 달 1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서 주민들이 물을 얻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신화=연합뉴스]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은 WSJ에 "아무도 하마스 지하 터널과 그 주변 토양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을 끌어오는 것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확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소식통은 이어 "아무도 본 적이 없는 터널에 어떻게 해수가 흘러갈지도 모르는 까닭에 이 작전의 효과를 가늠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 공습 재개 이후 부상해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팔레스타인 여아[AP 캡처]
이스라엘 공습 재개 이후 부상해 병원에서 진찰을 받는 팔레스타인 여아[AP 캡처]

이미 가자지구의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 사회의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토양과 수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침수 작전은 이스라엘과 미 정부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쟁 이후 가자의 물 부족 문제는 인도주의적 참사의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요르단강 서안 네블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마스 깃발을 흔들고 있다[AP 캡처]
요르단강 서안 네블루스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하마스 깃발을 흔들고 있다[AP 캡처]

가자 주민들의 식수원인 정수 시설들은 최근 작동을 멈췄으며, 이스라엘에서 가자로 이어지는 수도관 3개 중 하나는 전쟁 이후 완전히 끊겼다.

유엔에 따르면 나머지 두 수도관으로 들어오는 물도 급격히 줄어 전쟁 전 하루 최대 83ℓ가량 들어오던 물의 양은 전쟁 후 3ℓ로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의 지하 터널이 물이 얼마나 침투할 수 있는 구조인지 정확히 모르는 채로 바닷물을 지하에 흘려보내는 것은 가자의 하수와 정수 시설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도주의적 물품을 적재하고 라파검문소를 통과하는 이집트 트럭들[AFP 캡처]
인도주의적 물품을 적재하고 라파검문소를 통과하는 이집트 트럭들[AFP 캡처]

미국의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존 알터만은 "해수를 끌어오는 것이 기존의 수도와 하수 시설, 지하수 저장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기 어렵다"며 "또 해수가 근처 건물의 안정성에 미칠 영향도 미지수"라고 주장했다. 

앞서 이집트 정부가 2015년 밀수꾼들이 라파 국경 인근에 설치한 지하 땅굴을 제거하기 위해 해수를 채워 넣자 인근 농민들의 작물에 피해를 입혔다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

미 국방부와 중앙정보국(CIA)에서 고위 간부를 근무한 믹 멀로이는 장기간 물을 사용하는 것은 하마스 대원들을 지하 땅굴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마스 대원[WSJ 캡처]
하마스 대원[WSJ 캡처]

멀로이는 그러면서도 이 작전으로 "주변의 물에 염분이 침투한다면 인도주의적 위기가 악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수공전의 실행 여부는 이스라엘 손에 달린 셈이다. 이미 이번 전쟁으로 하마스 박멸에 모든 것을 집중하기로 한 이스라엘 정부로서는 수공전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시각이기도 하다.

하마스가 은신하는 가자지구 땅굴에 대해 수공전을 준비하는 이스라엘군[Times of Israel 캡처]
하마스가 은신하는 가자지구 땅굴에 대해 수공전을 준비하는 이스라엘군[Times of Israel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