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서 예멘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스트린다호[AFP/게티이미지 제공]
홍해서 예멘 후티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화염에 휩싸인 노르웨이 선적 유조선 스트린다호[AFP/게티이미지 제공]

가자지구 전쟁이 주변 접경지로 번지고, 홍해에서는 후티 반군과 미군 충돌이 이어지면서 중동과 인근 북아프리카 지역의 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연합뉴스는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18일자)를 인용, 오랫동안 위기에 처해있던 중동 경제가 최근 전쟁으로 인해 무너질 위험이 커졌으며 그 영향은 전 세계에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오른쪽)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오른쪽)의 궤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오른쪽)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오른쪽)의 궤적[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지난해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하기 이전에는 이스라엘의 첨단 기술 제품부터 걸프만의 석유에 이르기까지 중동 국가들의 전체 수출량의 5분의 1은 역내 무역이 차지했다.

중동 내에서 서로 적대적이었던 국가들도 서로 무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었지만, 전쟁 발발로 인해 수출 경로가 막히면서 역내 무역이 중단됐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국경 지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FP=연합뉴스]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레바논 국경 지대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AFP=연합뉴스]

특히 친이란 무장조직인 후티 반군이 홍해에서 항행 선박들을 공격하면서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후티의 무력 도발이 시작된 이후 세계 무역량의 10%를 담당하던 홍해의 컨테이너 물동량은 기존의 30% 정도까지 떨어졌다.

이는 이미 홍해 연안 국가의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이 탑승한 선박들이 19일(현지시간) 홍해에서 화물선 '갤럭시 리더'호를 포위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날 이스라엘이 운용하는 선박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한 뒤 갤럭시 리더호를 나포했으나, 이 화물선은 일본 해운사가 운용하던 영국 회사의 배인 것으로 알려졌다[EPA=연합뉴스]
예멘 후티 반군이 탑승한 선박들이 19일(현지시간) 홍해에서 화물선 '갤럭시 리더'호를 포위하고 있다. 후티 반군은 이날 이스라엘이 운용하는 선박을 납치하겠다고 위협한 뒤 갤럭시 리더호를 나포했으나, 이 화물선은 일본 해운사가 운용하던 영국 회사의 배인 것으로 알려졌다[EPA=연합뉴스]

에리트레아의 경제는 어업·농업·광업 생산물을 홍해를 통해 수출해 유지되고 있지만 이 통로가 마비됐고 내전 중인 수단 역시 해외 원조를 받는 유일한 통로가 막히는 바람에 현재 2480만명에게 원조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

수에즈 운하를 운영하는 이집트도 재정 위기에 처할 수 있다.

수에즈만 지나는 컨테이너선[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수에즈만 지나는 컨테이너선[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홍해와 지중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이집트는 지난 한 해 102억5000만달러(13조7000억원)를 벌어들였고, 이는 외환위기를 겪는 이집트의 주 수입원이 됐다.

따라서 수에즈 운하 통항량이 줄어 통항료 수입이 감소하면 현재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이집트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홍해와 수에즈운하로 연결되는 운송로의 사고 지역. 자료=Ambrey Analytics 블룸버그통신
  홍해와 수에즈운하로 연결되는 운송로의 사고 지역. 자료=Ambrey Analytics 블룸버그통신

올해 들어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통항료 수입은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 감소했다.

요르단은 전쟁으로 국내총생산(GDP)의 15%를 차지하는 관광 산업이 침체했다. 하마스의 공격 이후 요르단을 찾는 관광객 수는 54% 감소했다.

관광업 수입 감소로 요르단도 이집트와 마찬가지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전했다.

가자지구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가자지구에서 작전 중인 이스라엘군[신화=연합뉴스 자료 사진]

하마스와 전쟁 중인 이스라엘도 경제 충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GDP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첨단 기술 분야가 타격을 받아 투자자들이 자금을 회수하고 고객들은 주문을 취소하고 있다. 해당 업계에서 일하던 이스라엘 인력들은 전쟁에 투입됐다.

이스라엘군(IDF)은 2일(현지시간) 레바논 접경의 야로운 마을을 폭격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이곳이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몇 주 전에도 이곳을 공격한 적이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군(IDF)은 2일(현지시간) 레바논 접경의 야로운 마을을 폭격하는 장면을 공개하면서 이곳이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근거지라고 밝혔다. 이스라엘은 몇 주 전에도 이곳을 공격한 적이 있다[로이터=연합뉴스]

이스라엘 북부 국경에서 이스라엘군과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서로 공격을 주고받으면서 레바논 남부가 파괴됐고 레바논에서 5만명, 이스라엘 북부에서 9만6천명의 피란민이 발생했다.

공습으로 파괴된 건물들을 복구하려면 돈이 들지만, 경제 위기를 겪는 레바논에는 이를 감당할 자금이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통치하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는 이스라엘로 매일 출퇴근하던 20만명의 공장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공무원 16만명은 전쟁이 시작한 뒤로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서안지구에서 공공 서비스가 중단되고 공무원들의 대출 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 은행 위기가 발생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자 북부 지역 자발리아 난민촌 주민들 시체들[로이터 캡처]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사망한 가자 북부 지역 자발리아 난민촌 주민들 시체들[로이터 캡처]

이코노미스트는 중동의 경제 위기가 전 세계로 번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간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에도 나머지 세계 경제에는 그로 인한 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았지만, 중동의 많은 국가가 채무 위기에 빠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채무 위기는 특히 젊은층 실업으로 이어지면서 정치를 극단화하고, 이러한 파장이 전 세계에 미칠 수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