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중형항모 프린스 오브 웨일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 해군의 중형항모 프린스 오브 웨일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한때 5대양을 누볐던 '대양해군'의 원조인 영국의 자존심이 빠르게 무너지는 형국이다.

영국이 '해군 강국 부활'을 부르짖으며 퀸 엘리자베스함과 함께 건조해 취역한 배수량 6만5000t급의 중형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해군강국 부활' 내걸고 재래식 항모 취역... 비용 때문에 스키점프대 방식 채택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퀸 엘리자베스급 항모의 2번함이다. 

영국의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의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과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은 경항모인 인빈시블급을 대체하려고 퀸 엘리자베스함의 건조를 시작했다. 1번함인 퀸 엘리자베스함은 2014년 7월에 진수해 2017년 12월에 취역했다. 이어 2017년 9월에 진수된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2019년 12월에 취역했다.

두 항모는 길이가 280m로 '해상 군사도시'에 비유될 만큼 중형항모다. 미국과 달리 두 항모의 추진체계는 핵이 아닌 디젤엔진 체계다. 애초 핵추진으로 건조하는 방안도 검토됐지만 결국 엄청난 비용 때문에 재래식으로 결정됐다.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함[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재래식이다 보니 1만 해리(1만8520㎞)마다 재급유를 해야 한다. 이는 재급유가 필요없는 핵 항모만 운영하는 미국과 프랑스보다 작전능력 면에서는 뒤떨어진다는 평가다.

작전 반경이 1만9000㎞인 두 항모는 대서양과 지중해 등 영국 해군의 주 작전 무대는 물론이고 태평양에서도 활동한다.

두 항모의 가장 큰 외부 특징 중의 하나는 두개로 나눠진 함교(아일랜드) 배치다. 전방은 항해용으로, 후방은 항공관제용으로 각각 기능한다. 이는 임무 중 피격이나 침수돼 동력을 한꺼번에 상실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서 이륙 중인 F-35 스텔스 전투기[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서 이륙 중인 F-35 스텔스 전투기[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애초 영국은 스키점프대 방식인 1번함과 달리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미 해군처럼 캐터펄트의 도움으로 이륙하고, 어레스팅 기어로 착륙하는 'CATOBAR' 이착륙방식을 채택하려고 했다. 그러나 역시 비용 문제로 스키점프대 방식을 채택했다.

재래식 항모지만 탑재 함재기 전력은 만만찮다. 수직이착륙 기능을 갖춘 미국제 F-35B '라이트닝 2' 스텔스 전투기 26대를 비롯해 치누크 중형 헬기, AH-64 아파치 공격헬기, AE101(EH101) 수송헬기, AW159 와일드 캣 다목적 헬기 등 최대 60대 함재기를 탑재한다. 또 승조원과 특수 임무에 투입되는 해병대원 등 1600명이 탑승한다.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 배치된 헬기전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 중형 항공모함 퀸 엘리자베스에 배치된 헬기전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이와 함께  402㎞ 반경에서 동시에 1000대 규모의 선박과 항공기 움직임을 감시할 수 있는 첨단 장거리 레이더 기능도 갖췄다.

그러나 취역 과정은 순탄하지 못했다. 퀸 엘리자베스 함은 2017년 12월 취역식 직전 시험운항 중에 추진축 가운데 하나가 고장이 나 격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바람에 바닷물이 선체 하부로 유입되는 사고를 일으켜 논란이 됐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달 초 퀸 엘리자베스함이 출항 직전 정기 점검에서 오른쪽 프로펠러축 결합부 이상이 발견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합동 군사훈련에 참가하려던 계획이 취소됐다.

영국 해군 중형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TNI 제공]
영국 해군 중형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TNI 제공]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도 2022년 프로펠러축 문제로 출항 직후 복귀해 9개월 간 수리를 받는 등 수시로 문제를 일으켜 골칫거리가 됐다.

항모전단 구성에도 구멍이 생겼다. 조비가 애초 계획보다 배로 늘어나는 바람에 항모 방어 등 작전에 필수적인 미사일 구축함과 호위함, 지원함 등 수상함정 수가 부족한 상태다. 

해군 전문매체 네이벌 테크놀로지(NT)는 두 척의 항모가 각각 구축함 네 척과 수 척의 호위함으로 전단을 구성해 작전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적의 미사일 공격에 피습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꼬집었다.

"2028년까지 6조원에 처분하겠다"... 원인은 재정난과 병력 부족

이런 상황에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의 매각 소식이 들려왔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지난달 28일 복수의 영국 해군 소식통을 인용, 건조비만 35억파운드(5조9420억원)가 든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이 재정 압박으로 더는 운영이 힘든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건조 중인 영국의 중형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건조 중인 영국의 중형 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제한된 병력 지원에 따른 유지 문제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소식통은 이에 따라 이 항모를 운영하지 않은 채 그대로 두거나(mothballed)나 우방국에 매각할 가능성이 검토되고 있다고 밝혔다. 

소식통은 영국 해군이 이미 항모 전력을 유지할 능력이 의문시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더구나 정치적 결정으로 문제 해결은커녕 오히려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운영 기회를 오히려 방해한다고 꼬집었다.

이에 '해군 기획단'(Maritime Enterprises Planning Group) 차원에서 매각 문제를 논의됐다. 소식통은 일각에서 "해군이 전력유지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함대 전력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있 다"면서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은 예비자산"이라고 지적했다.

미·영·호주, 새 안보동맹 '오커스' (PG)[연합뉴스]
미·영·호주, 새 안보동맹 '오커스' (PG)[연합뉴스]

그러나 반대론자들은 경제적인 이유로 나섰다. 값비싼 항모가 거의 사용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할 때 예비전력 확보도 좋지만 재무건전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처분하거나 AUKUS 소속인 호주나 미국 등 동맹국과 공유하는 방안도 한 방안(option)이라도 지적했다.

데일리메일은 두 항모의 비용이 12조원가량인 현실에서 영국 해군이 독자적으로 계속 보유하거나 적절하게 운용할 수 없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의견이라고 전했다.

데일리메일이 전한 영국 중형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전단 구성[Daily Mail 캡처]
데일리메일이 전한 영국 중형항공모함 프린스 오브 웨일스 전단 구성[Daily Mail 캡처]

또 항모 지원함인 RFA 포트 빅토리아함이 있지만, 2028년에 퇴역하는 것도 주목할만하다고 지적했다. 

중형 항모 퀸 엘리자베스함에서 훈련 중인 영국 해병 특공대원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중형 항모 퀸 엘리자베스함에서 훈련 중인 영국 해병 특공대원들[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이와 함께 대두된 것이 항모 운용 인력이다. 두 항모처럼 6만5000t급에는 700명의 승조원이 필요하지만 모집과 유지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영국 하원 국방위원회는 지난달 보고서를 통해 영국군에서는 8명이 전역하면 5명밖에 입대하지 않는 등 인력 이탈이 충원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지원함 RFA 포트 빅토리아[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영국 해군의 항공모함 지원함 RFA 포트 빅토리아[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이에 따라 글로벌 작전에도 큰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홍해 깡패'로 등장한 예멘의 후티 반군 조직 감시와 제한보복 임무를 수행 중인 미 해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전단에 대한 지원과 임무 교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이에 대해 영국 해군은 공식적으로 프린스 오브 웨일스함의 매각 검토는 사실이 아니라고 공식 부인하고 나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매각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결국 영국의 자존심도 돈 때문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는 셈이다.

홍해에서 활동 중인 미 해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미 해군 제공]
홍해에서 활동 중인 미 해군의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항모[미 해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