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베트남을 국빈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3일(현지시간) 하노이 주석궁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악수하고 있다.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싱가포르와 함께 동남아권에서 최고 수준의 정치안정을 유지해온 베트남에 '변화 기류'가 감지된다.

응우옌 푸 쫑(Nguyen Phu Trong) 공산당 서기장의 '수제자'로 권력 서열 2위인 보 반 트엉(Vo Van Thuongㆍ53) 국가주석(대통령)이 취임 1년여 만에 낙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작년 2월 전당대회 폐막 후 기자회견을 하는 응우옌 푸 쫑베트남 공산당 서기장[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작년 2월 전당대회 폐막 후 기자회견을 하는 응우옌 푸 쫑베트남 공산당 서기장[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베트남은 당 서기장(서열 1위), 국가주석, 총리(서열 3위), 국회의장(서열 4위)이 권력을 분점하는 집단지도체제를 운영한다. 

전문가들은 트엉 주석의 중도낙마는 거의 '확실시'된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그의 중도하차 이유와 후임자 등에 대해 온갖 '소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국회, '인사문제' 논의 위한 특별 임시회의 소집...'최연소' 국가주석으로 각광

로이터ㆍ블룸버그 통신 등 일부 외신 보도와 현지 전문가들의 정보 등을 종합하면 베트남 국회는 "인사 문제를 심의·의결하기 위해 제15대 국회 제6차 임시 회의를 21일 소집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서한을 의원들에게 발송했다.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로이터=연합뉴스 자료 사진]

구체적인 소집 이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트엉 주석의 사임이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정설이다. 이 경우 그는 취임 1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트엉은 쫑 서기장이 가장 아끼는 '황태자'다. 1970년 북부 하이즈엉 성에서 태어난 그의 주 성장지는 '경제수도' 호찌민시 등 남부다. 호찌민국립대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철학을 전공한 트엉은 호찌민공산청년동맹 중앙상임위 위원에 선출된 후 공산당 중앙집행위 후보위원, 공산청년동맹 중앙위 제1서기, 베트남 청년위원장, 베트남 청년연맹 위원장 등 주로 공산당 일선조직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후 꽝응아이성 당서기, 호찌민시당위원회 상임부서기장, 정치국 위원, 공산당 중앙선전부장, 공산당 중앙위원외 사무총장 등을 거친 전문 당료다.

2일 국회에서 신임 국가주석 지명 수락 선서를 하는 보 반 트엉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 상임서기[VnExpress 캡처]
2일 국회에서 신임 국가주석 지명 수락 선서를 하는 보 반 트엉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 상임서기[VnExpress 캡처]

이런 경력 덕에 그는 쫑 서기장의 눈에 들어 52세의 나이에 일약 출세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지난해 2월 다수의 고위공직자들이 전국을 뒤흔든 부정부패 스캔들에 휩싸이자 책임을 통감한다며 퇴임한 응우옌 쑤언 푹을 이어 국가주석으로 취임한 트엉은 지난 1년여 동안 활발하게 국내외에 존재감을 알리는 데 주력해왔다.

돌연 사임을 발표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VnExpress]
돌연 사임을 발표한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국가주석[VnExpress]

트엉 주석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부패와의 전쟁'이다. 쫑 서기장이 최고사령관으로 강도높게 진행 중인 이 전쟁은 부패, 권한 남용, 횡령 등 공직사회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던 부정부패 일소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트엉 주석은 또 럼(To Lam) 공안부 장관과 함께 야전군사령관으로 이를 지휘해왔다.

또 럼 베트남 공안부장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또 럼 베트남 공안부장관[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특히 그는 2026년 세 번째 임기를 마치는 쫑을 이을 차기 당서기장 '재목'으로 유력시돼왔다. 

"빼도 박도 못하는 명백한 뇌물수수 증거"..."이미 사퇴 의사 표시"

지금까지의 정보를 분석해보면 트엉 주석의 낙마를 몰고온 가장 큰 이유는 거액의 뇌물수수설이다. 정보와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기 때문이다.

내용은 간단하다. 하노이 외곽의 빙푹(Vinh Phuc)성에 근거지를 둔 부동산개발업체의 비리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의외의 수확물'이 발견됐다. 바로 트엉 주석이 중부 꽝응아이성 당서기장으로 근무 시 문제의 업체로부터 '거액'의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뛰어난 해안 경치로 유명한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뛰어난 해안 경치로 유명한 베트남 중부 꽝응아이성[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전문가들은 "뼈도 박도 못할 만큼 명백한 증거"로 트엉 주석도 수수 사실을 시인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일각에서는 "자신도 거액의 뇌물을 받은 인물이 마치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직자 부정부패 척결을 지휘해왔다는 것이 전형적인 내로남불"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 쫑 서기장이 이런 사실에 분노를 넘어서 허탈감에 빠진 나머지 정국수습을 위해 조기사퇴 쪽으로 결심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후임자는 누가?.. 쫑 서기장 겸임설도

쫑 주석이 낙마 시 후임자에 대해 관심이 모아진다. 어차피 국가주석은 최고 권력 실세인 정치국원 가운데서 선임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하면 여성 정치국원인 쯔엉 티 마이(Truong Thi Mai)와 역시 정치국원 겸 공안부장관인 또 럼 두 사람의 가능성이 제기된다.

국가주석 선출 가능성이 제기된 쯔엉 티 마이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국가주석 선출 가능성이 제기된 쯔엉 티 마이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위키미디어커먼스 제공]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럼 장관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현 자리에서 물러나 별다른 실속없이 외향만 화려한(ceremonial) 국가주석 자리로의 이동을 달가워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국가주석직에 오르면 오히려 과거의 '치부'가 드러날 수도 있고 이 경우 방어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았다.

지난해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만나 기념촬영하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VNA 제공]
지난해 10월 31일 베이징에서 만나 기념촬영하는 응우옌 푸 쫑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VNA 제공]

이에 쫑 서기장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처럼 당서기장을 겸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베트남의 이런 권력지형 변화가 최대 해외투자국 지위를 누려온 한국에 어떤 여파를 몰고올지 예의주시해야 한다. 

베트남 박닌성의 삼성전자 공장[삼성전자 제공. 연합뉴스]
베트남 박닌성의 삼성전자 공장[삼성전자 제공.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