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인명 수색 계속되는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현장[EPA=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인명 수색 계속되는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현장[EPA=연합뉴스]

러시아 모스크바 공연장에서 벌어진 무차별 총격 및 방화 테러 사망자 수가 140명대로 늘었다.

금요일 밤 다수의 군중이 몰려있던 가운데 사건이 발생한 데다, 부상자 중 중상자가 많아 추가 사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CNN 방송, 로이터 통신 등 외신과 연합뉴스가 전했다.

안드레이 보로비요프 모스크바 주지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소방·구조인력 719명이 사건 현장에 투입돼 구조물 해체 및 인명 수색을 하고 있다며 "작업이 적어도 며칠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로비요프 주지사는 테러 장소인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중에서도 콘서트홀이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는 등 피해가 집중됐다며 "남은 천장 부분이 붕괴할 위험이 있다"고 전했다.

23일 러시아 총격 테러를 당한 공연장 모습[로이터=연합뉴스]
23일 러시아 총격 테러를 당한 공연장 모습[로이터=연합뉴스]

피해자들은 테러 당시 총상이나 화상을 입거나 구조물 붕괴 등으로 외상을 입은 경우도 있다.

모스크바 가브릴로프 혈액센터에는 혈액 공급이 필요한 환자들을 위해 헌혈에 나선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러시아 국영 방송사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은 이날 텔레그램에서 143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고 전했다.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가브릴로프 혈액센터에 헌혈하러 모인 시민들[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23일(현지시간) 모스크바 가브릴로프 혈액센터에 헌혈하러 모인 시민들[타스=연합뉴스 자료 사진]

보로비요프 주지사는 사망자 유족에게 300만루블(4383만원)을 위로금으로 지급한다고 밝혔다. 입원 환자에게는 100만루블(1461만원), 외래 치료를 받는 경상자에게는 50만루블(730만5000원)을 각각 지원한다.

23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러시아 크렘린궁 제공]
23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러시아 크렘린궁 제공]

러시아 스푸트니크 통신은 이날 테러를 한 용의자들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범행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국영 방송사 RT의 편집장 마르가리타 시모냔이 이날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검거된 테러범 중 1명은 당국의 신문 과정에서 "지시자가 공연장에 있는 모든 사람을 살해하라는 임무를 맡겼다"고 진술했다.

이 용의자는 자신이 돈을 벌기 위해 범행했으며, 지난 4일 튀르키예를 통해 러시아로 입국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전날 핵심 용의자 4명을 포함해 이 사건 관련자 총 11명을 검거했다.

이와 관련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수도 모스크바의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의 피해자들에게 애도를 표하고 사건에 대한 강경 대응 의지를 밝혔다.

총격 테러를 당한 모스크바의 공연장[로이터=연합뉴스]
총격 테러를 당한 모스크바의 공연장[로이터=연합뉴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국민 연설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모든 이들에게 깊은 조의를 표한다"며 일요일인 24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선포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어 당국이 체포한 11명 중 총격·방화 범행에 직접 연루된 용의자 4명이 우크라이나 접경지 브랸스크에서 체포된 점을 직접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우크라이나 방향으로 도주했는데, 초기 정보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쪽에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창구가 마련돼 있었다고 한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는 평화롭고 무방비 상태였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계획된 조직적인 대량 학살을 마주하고 있다"며 "이 범죄를 저지른 모든 가해자와 조직은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배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또 "모스크바와 전국 모든 지역에 추가적인 테러 방지 조처를 했다"며 "이제 중요한 것은 배후자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테러 현장에 출동한 대테러부대[로이터=연합뉴스]
테러 현장에 출동한 대테러부대[로이터=연합뉴스]

반면 우크라이나는 이 같은 러시아 측 주장을 전면 부인하며 이번 테러가 자신들과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대통령 고문은 "우크라이나는 이 사건들과 전혀 관련이 없다"며 러시아 측의 주장이 절대적으로 용납될 수 없으며 터무니없다고 일축했다.

우크라이나는 나아가 이번 참사가 푸틴 대통령 측의 자작극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AFP=연합뉴스]
볼로도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AF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군 정보기관은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테러 공격은 푸틴의 명령에 따라 러시아 특수부대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도발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더욱 확대하고 확장하려는 것이 목표였다"고 주장했다.

존 커비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브리핑에서 "현재로서는 우크라이나나 우크라이나인이 연루돼 있다는 징후는 없다"며 '우크라이나 연루설'에 선을 그었다.

커비 美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조정관[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커비 美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조정관[EPA=연합뉴스 자료 사진]

한편 테러를 감행한 세력은 이슬람 극단주의 조직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가니스탄 지부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으로 밝혀졌다. 

ISIS-K는 이 공격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미국도 이 공격이 IS 소행이 맞다고 확인했다.

호라산은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프간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옛 지명이다.

IS에서 가장 활동적인 지역 분파인 ISIS-K는 2014년 말 아프간 동부에서 발호해 극도의 잔혹행위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조직원 수는 2018년 정점을 찍고 감소했다.

ISIS-K는 아프간 안팎에서 모스크 등을 공격한 이력을 갖고 있다.

지난 1월 이란 혁명수비대 산하 쿠드스군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 4주기 추모식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도 이 단체 소행이었다.

2020년 1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드론 공습 이후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숨졌다[AP 캡처]
2020년 1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군의 드론 공습 이후 불길이 치솟고 있다. 이 공습으로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가셈 솔레이마니가 숨졌다[AP 캡처]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올해 초 미국은 이 단체가 이란에서 약 100명의 목숨을 앗아간 폭탄 테러를 자행했음을 감청으로 확인했다. 당시 테러에서는 2차례 폭탄이 터져 최소 84명이 숨지고 284명이 다쳤다.

이들은 2022년 9월엔 주아프간 러시아 대사관에서 발생한 자살폭탄테러가 자신들 소행이라고 주장했고, 2021년 카불 국제공항 테러도 배후를 자처했다.

마이클 쿠릴라 미 중부사령관은 ISIS-K가 '아무런 경고 없이 6개월 이내에' 해외에 있는 미국과 서방의 이익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테러 전문가들은 이번 ISIS-K가 모스크바를 노린 것은 극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이 단체는 최근 몇년간 푸틴 대통령을 비판해왔다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이 체첸 등지에서 잔혹한 군사작전을 벌이고, 소련 시절 아프간 침공 당시 무슬림을 상대로 잔학행위를 자행했다는 게 그 이유다.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반군세력으로부터 '사탄의 마차'라고 불리며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한 당시 소련군의 MI-24 하인드 폭격 장면[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1980년대 아프가니스탄 내전에서 반군세력으로부터 '사탄의 마차'라고 불리며 가공할만한 위력을 발휘한 당시 소련군의 MI-24 하인드 폭격 장면[러시아 국방부 홈페이지 캡처]

미국 반테러 연구기관 수판센터의 콜린 클라크는NYT에 "ISIS-K는 지난 2년간 러시아에 집착해왔으며 선전매체에서 자주 푸틴 대통령을 비판했다"고 말했다.

그는 "ISIS-K는 러시아가 아프간, 체첸, 시리아에 개입한 것을 언급하면서 크렘린궁이 무슬림의 피를 손에 묻히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고 덧붙였다.

미 윌슨센터의 마이클 쿠겔먼은 영국 BBC 방송에 "ISIS-K는 러시아가 정기적으로 무슬림 탄압 활동에 관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무슬림 단체가 러시아를 공격한 사례는 이전에도 있었다.

국제테러단체로 국가까지 참칭한 이슬람국가(IS)[연합뉴스 자료 사진]
국제테러단체로 국가까지 참칭한 이슬람국가(IS)[연합뉴스 자료 사진]

2015년 이집트 시나이반도 상공에서 러시아 항공기가 추락해 대부분 러시아인인 탑승자 224명 전원이 사망했다. IS는 당시 소행을 자처했고, 추후 폭파장치 사진을 공개하기도 했다.

2017년 15명의 목숨을 앗아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하철 폭탄 테러도 급진 이슬람주의자와 연계된 것으로 드러났다.

<원문 참고: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4/mar/23/theres-little-reason-to-doubt-attack-on-moscow-venue-was-by-islamic-state

https://www.nytimes.com/2024/03/22/us/politics/isis-k-moscow-attack.html

https://edition.cnn.com/2024/03/22/europe/crocus-moscow-shooting/index.html

https://www.reuters.com/world/europe/shooting-blast-reported-concert-hall-near-moscow-agencies-2024-03-22/